서울시, 전통에 디지털 기술 더한 '소반'…밀라노 매혹하고 DDP로
국내외 디자이너 전통 소반의 구조와 쓰임을 현대적 감각과 제작 기술로 재해석
박노신 기자
park11083@naver.com | 2026-09-16 22:38:02
[뉴스힘=박노신 기자] 조선시대 한 사람 앞에 놓이던 작은 밥상 ‘소반’이 2026년 서울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디자인 오브제로 돌아왔다. 지난 4월 세계 디자인계의 시선이 모인 밀라노 디자인위크에서 먼저 공개돼 호평받은 ‘서울의 소반’ 17점이 이번에는 서울 시민을 만난다.
서울디자인재단은 지난 9월 14일부터 10월 8일까지 DDP디자인 둘레길 갤러리에서 《SEOUL LIFE 2026: Heritage Reimagined, Soban》전시를 개최한다. 국내외 디자이너가 한국의 전통 생활가구인 소반을 동시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작품 17점을 선보인다.
작품들은 지난 4월 밀라노 디자인위크 기간 ADI 디자인뮤지엄에서 처음 공개돼 2만 346명의 관람객이 방문했다. ‘한국의 전통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한 점이 인상적이었다는’ 호평이 이어지며, 한국의 전통 생활 문화를 동시대 디자인으로 풀어낸 기획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안드레아 칸첼라토 ADI 디자인뮤지엄 관장은 소반에 담긴 한국의 생활문화와 관계의 의미를 주목하고, 전통을 동시대 디자인의 언어로 새롭게 해석한 이번 전시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김준구 주이탈리아 대한민국 대사도 한국 공예의 정제된 미감과 첨단기술의 결합이 전통의 가치를 미래로 확장하고, 한국과 이탈리아를 디자인이라는 보편적 언어로 연결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서울 전시는 밀라노에서 확인한 공감과 가능성을 바탕으로, 서울의 일상에서 출발한 작품을 다시 시민의 삶 가까이에서 공유하는 자리다.
소반은 식사와 다과를 위한 상이자 운반과 보관이 가능한 생활 도구로, 지역과 용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구조로 발전해 왔다. 작고 이동이 편리한 구조에는 한 사람이 하나의 상을 사용하는 독상 문화와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는 공동체의 생활 방식이 함께 담겨 있다.
작품에는 목공·옻칠·나전 등의 전통 공예기술과 3D 프린팅·디지털 모델링 등 현대 제작기술이 폭넓게 활용됐다.
이번 전시에는 국내 13팀과 해외 4팀 등 총 17팀의 디자이너가 참여했다. 국내에서는 강이연 · 김진식 · 르쥬 · 문승지 · 박중원 · 비포머티브 · 성정기 · 손동훈 · 슬기와 민 · 양성임 · 유이화 · 이석우 · 앤디앤종이 해외에서는 스테파노 지오반노니 · 안나 질리 · 오딜 데크 · 마르코 오지안이 참여해 각자의 관점으로 소반을 재해석했다.
참여 디자이너들은 소반의 기본 형식과 구조를 유지하면서 소재, 제작방식, 쓰임을 새롭게 확장했다. 옻칠과 나전 등 전통 기법은 해당 분야 전문가와의 협업을 통해 구현했으며, 디지털 제작 기술과 현대적 소재를 결합해 전통과 기술이 공존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김진식의 '달팽이와 산책'은 조선시대 묵포도도(墨葡萄圖)의 얽힌 넝쿨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동양화의 선과 먹의 농담이 지닌 깊이를 3D 프린팅으로 구현한 유기적 다리 구조로 옮겨 시각과 촉각이 교차하는 감각을 전한다.
문승지의 '덩이소반'은 나무를 깎아 맞추는 ‘짜임’에서 층층이 쌓는 ‘적층’으로의 전환을 보여준다. 호랑이 다리를 본뜬 호족반의 상징적 형태가 실루엣만 남긴 채 하나의 덩어리 안으로 흡수되며 구조의 흔적을 드러낸다.
성정기의 '두루마기'는 신분의 구별 없이 모두가 입었던 옷의 상징적 의미를 서울의 'S'자를 형상화한 유연한 다리 곡선으로 옮겨냈다.
슬기와민의 '일인일가일반'은 조선시대 독상의 용도와 오늘의 1인 생활 방식을 겹쳐 보이며 동시대 서울 라이프스타일의 단면을 디자인으로 제시한다.
안나 질리의 'MIAWO'는 네 다리 달린 소반을 일상을 함께하는 반려동물의 모습으로 재해석했고, 오딜 데크의 'Fluid Maze'는 2차원과 3차원을 오가는 유동적 미로의 이미지를 통해 여정 속의 발견을 이야기한다.
이석우의 '고양이 다리 소반'은 엄격한 예법과 해학적 정서가 공존하던 조선시대의 이중성을 기와 위를 걷는 고양이의 움직임으로 재해석했다. 정적인 소반의 다리를 동적인 형상으로 치환해 규범 속에서도 유연하게 확장되던 한국 공예 특유의 감각을 시각화한다.
전시와 연계해 9월 16일 DDP에서 참여 디자이너와 제작 전문가가 함께하는 디자인 토크를 개최한다. ‘전통 소반의 현대적 재해석과 제작’을 주제로 참여 디자이너 김종완, 김진식, 르쥬, 성정기, 손동훈, 이기용 디자이너와 옻칠 전문가 정상엽이 작품의 기획과 제작 과정, 전통 기법과 현대기술의 협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17점은 전시 종료 후 DDP 소장품으로 귀속된다. 재단은 작품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고 향후 전시와 연구·교육 프로그램 등에 활용해 서울의 생활 문화와 동시대 디자인을 연결하는 자산으로 축적할 계획이다.
전시 이후 작품을 소장품으로 이어가는 것은 2026년의 디자이너들이 서울의 삶과 전통을 해석한 다양한 시선을 동시대 기록으로 남긴다는데 의미가 있다. DDP는《SEOUL LIFE》를 통해 축적되는 작품을 기반으로 시대별 생활문화와 디자인의 변화를 조명하고 이를 국내외 관람객과 지속해서 공유해 나갈 계획이다.
차강희 서울디자인재단 대표이사는 “소반은 한국의 전통 생활 문화를 담고 있으면서도 동시대의 삶과 유연하게 연결될 수 있는 디자인 자산”이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외 디자이너가 새롭게 해석한 소반을 시민들과 공유하고, 오늘의 서울을 보여주는 디자인 기록으로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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